공공 입찰을 앞둔 대표에게 "가격은 어떻게 정하셨습니까"라고 물으면 대답은 대개 비슷합니다. 경쟁사보다 조금 낮게, 떨어지면 다음엔 더 낮게. 입찰은 결국 가격 싸움이라는 생각입니다.
그런데 그 생각은 평가표를 확인하기 전에 굳어진 경우가 많습니다. 최근 공고된 대형 사업 하나와 막 결과가 나온 사업 하나를 나란히 놓고 보겠습니다.
평가표부터 펴 보면
국민건강보험공단은 9월 말 '2026년 노후 인프라 교체 및 정보시스템 고도화 사업'을 냈습니다. 사업비는 1,016억 원입니다. 통신·보안장비 450식 교체·증설, 신규 장비 19식 도입, 재해복구(DR) 환경 보강, 암호화·접근통제 같은 보안 강화가 한 사업에 묶여 있고, 요구사항은 384개입니다.
평가 비중은 기술평가 90%, 가격평가 10%입니다. 1,016억 원짜리 사업에서 가격이 차지하는 점수는 100점 중 10점이라는 뜻입니다.
| 항목 | 내용 |
|---|---|
| 사업 | 2026년 노후 인프라 교체 및 정보시스템 고도화 |
| 사업비 | 1,016억 원 |
| 범위 | 통신·보안장비 450식 교체·증설, 신규 장비 19식, DR 보강, 보안 강화 등 |
| 요구사항 | 384개 |
| 평가 비중 | 기술 90 : 가격 10 |
실제로 승부가 갈린 곳
같은 구조의 사업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는 10월 1일 발표된 K-에듀파인 고도화 사업(2,173억 원)이 보여 줍니다. 세 컨소시엄의 점수는 이렇습니다.
| 컨소시엄 | 기술 점수 | 가격 점수 | 종합 |
|---|---|---|---|
| 아이티센엔텍 (우선협상대상자) | 90.0 | 9.998 | 99.998 |
| 삼성SDS | 86.1556 | 10.0 | 96.1556 |
| LG CNS | 83.1556 | 9.9981 | 93.1537 |
세 곳의 가격 점수는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차이가 0.002점입니다. 기술 점수는 1위와 2위 사이에서만 3.84점이 벌어졌습니다. 그리고 가격 점수 만점을 받은 곳은 우선협상대상자가 되지 못했습니다.
이 사업은 반대 방향의 압력도 보여 줍니다. 보도에 따르면 총사업비는 당초보다 줄었고, 그사이 "반도체 가격이 오르며 서버·스토리지 시장가는 애초 산출 단가보다 크게 뛰었다"고 합니다. 예산은 줄고 장비 원가는 오른 사업에서 가격을 더 깎으면, 줄어드는 것은 점수 차이가 아니라 수행사의 마진입니다.
발주처도 바닥을 올리고 있다
조달청은 9월 15일부터 군수품 적격심사 전 구간의 낙찰하한율을 2%p 일괄 올렸습니다. 낙찰하한율은 이보다 낮게 써 내면 낙찰받을 수 없는 선입니다. 조달청은 그 취지를 납품 중소기업이 "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"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.
분야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습니다. 발주처는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품질과 납품 위험으로 읽기 시작했고, 그래서 바닥을 직접 올리고 있습니다. 가격을 무기로 삼을 수 있는 폭이 제도 안에서 좁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.
가격 비중이 10%인 입찰에서 단가를 깎는 것은, 점수를 얻기 전에 마진을 먼저 잃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.
그래도 깎게 되는 이유
평가표를 알면서도 많은 회사가 결국 값을 내립니다. 대개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.
- 기술 점수는 통제가 안 된다고 느낍니다. 평가위원의 판단은 예측하기 어렵고, 가격은 내가 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숫자처럼 보입니다.
- 지난번에 근소하게 졌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. 하지만 그때 갈린 것이 정말 가격이었는지는 점수표를 다시 봐야 압니다.
- 원가 하한을 미리 정해 두지 않았습니다. 기준선이 없으면 마감 직전 회의에서 숫자가 한 번 더 내려갑니다.
값을 정하기 전에 할 일 다섯 가지
- 배점표에서 가격 비중을 먼저 확인합니다. 기술 90 : 가격 10인지, 80 : 20인지에 따라 가격의 역할 자체가 달라집니다.
- 가격 1%와 기술 점수 1점의 교환비를 계산합니다. 가격을 몇 퍼센트 내려야 가격 점수가 1점 오르는지, 그 금액이면 제안서의 어느 부분을 얼마나 보강할 수 있는지 나란히 놓아 봅니다.
- 원가 하한을 투찰 전에 문서로 정합니다. 컨소시엄이라면 장비·솔루션·수행 단가를 누가 얼마나 지는지까지 정해 둡니다. 이 선은 마감 직전 회의에서 바꾸지 않습니다.
- 가격의 근거를 제안서의 언어로 맞춥니다. 이 값이 왜 이 범위와 품질에 맞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, 우선협상 이후의 협상에서도 값을 지킬 수 있습니다.
- 결과가 나오면 점수표를 복기합니다. 이번에 갈린 것이 기술인지 가격인지 기록해 두면, 다음 입찰에서 '조금 더 낮게'라는 막연한 결론을 피할 수 있습니다.
마무리
공공 입찰에서 가격은 중요합니다. 다만 평가표가 정한 만큼만 중요합니다. 가격 비중이 10%라면, 남은 90%를 어디서 얻을지 먼저 계산하고 그다음에 값을 정하는 것이 순서입니다.
값을 얼마로 쓸지는 결국 경영진이 정합니다. 그 결정을 감이 아니라 계산 위에서 내릴 수 있도록, 평가표와 원가와 경쟁 구도를 함께 놓고 선택지를 나눠 보는 것이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.
· 지디넷코리아 — 국민건강보험공단, 1016억원 규모 정보시스템 고도화 사업 추진 (2026.09.29)
· 디지털데일리 — K-에듀파인 고도화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(2026.10.01)
· 아시아통신 — 조달청, 군수품 낙찰하한율 2%p 상향 (2026.09.15)
고지 · 본 글은 공개 보도를 바탕으로 한 분석이며, 언급된 기관과 기업은 ROIGENT의 고객사가 아닙니다. 특정 입찰의 결과를 평가하거나 투찰 가격을 권고하지 않습니다. 평가 기준은 사업마다 다르므로 해당 공고의 제안요청서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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